퇴사후 헬스장 카운터 봅니다

퇴사 후 헬스장 카운터 봅니다

하나둘12 2023. 2. 26. 13:42

 

내가 느낀 조직 생활의 현실

25살 콘텐츠 마케터로 첫 취업하여, 20대 중후반을 광고대행사 AE, 마케터로 보냈다. 처음엔 내 카피가 브랜드 콘텐츠로 활용된다는 사실이, 사람들이 내 콘텐츠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다는 사실이 마냥 설레고 기뻤다. 하지만 나는 '콘텐츠 업무'가 적성에 잘 맞는 것과는 별개로 '조직 생활'이 극심하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.

 

 

나는

- 업무에 자율성이 부여된 환경을 좋아한다.

- 나는 업무를 좀 더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었다. 

- 나는 공과 사를 어느 정도 분리하고 싶었고, 점심시간은 나의 자유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. 

- 피상적인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, 1:1 혹은 소수 모임을 좋아한다.

- 나는 '연륜'이 따르는 것이라면 이해하지만, 그저 나이와 직급이 무기이자 권위인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.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는 수평적인 환경을 원했다. 

-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료를 원했다. 

 

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.

- 팀장님은 내 업무에 마이크로 매니징 했다. 글자 폰트와 디자인 아이콘 하나까지 피드백을 주시곤 했다.

- 조직 내에 얽혀있는 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. 대체로 '안 된다', 어렵다'는 답변을 많이 받곤 했다. 그 과정에서 지쳐갔다. 

- 혼밥을 이해 못 하는 동료들이 많았다. 개인적 친목을 쌓지 않으면, 그건 꼭 업무에도 지장을 주었다. 

- 직원들과 퇴근 후 단체로 밥 먹는 게 취미인 직장 상사가 버거웠다. 

-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이사님께 '감사하다는 인사'를 본인이 내킬 만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, 아침부터 고함을 들으며 전 직원이 집합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. 인사를 안 한 것도 아니고, 그저 '본인이 내킬 만큼'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. 

- 업무를 감정적으로 대하고, 매일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동료가 있어 조직 생활 내내 기가 빨렸다. 

 

 

그랬다. 노력도 많이 해보았다. 나의 의견을 잘 설득하는 법, 에너지 뱀파이어를 대하는 법 등을 말이다. 하지만 쉽지 않았다. 어느 정도 거리 두기와 신경 끄기, 떼어내기 연습도 해보았다. 하지만 결국엔 한 공간 안에서 계속 부딪혀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의 바운더리를 잘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. 

 

 

창업을 시도하다

그 결과로 조직을 만들어보겠다는 '창업'을 시도해봤다. 하지만 결국 창업도 '사람'이 섞여 있는 일이라, 내가 만들더라도 조직 자체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를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.

창업의 처음은 5-6년 정도를 알고 지낸 개발자 친구에게서 동업 제안을 받아서였다. 나와 그 친구를 포함하여 7명의 팀이 꾸려졌고, 포부는 크게 '유니콘' 정도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.

그런데 어느 날, 창업의 방향을 바꾸자는 '피보팅'의견이 나왔다. 나는 지금에서 조금 변주를 준 의견을 내며, 개발 방향은 지금처럼 가자고 했다. 그런데 개발 방향을 아예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다. 나는 이에 반대했지만, 나머지 6명은 그 의견에 동의를 했다.

결국 나만 의견이 다른 6:1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.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나도 적당히 순응했을 수 있지만, 내가 원하는 업무 방향을 좀 더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싶어 창업을 시작한 만큼 내 의견을 좀 더 피력해보았다. 게다가 내 시간과 노동력, 에너지가 들어가야 하는 일이니 좀 더 그랬다. 

 

그러자 친구는 내가 팀의 분위기와 사기를 해친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. 얼마 후 전화로 내가 팀에서 지금 단계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. '지금은 잠시 나가 달라'였지만, 재합류는 아마 없을 것으로 보였다. 그 뒤로 1년 이상이 지났지만 개인적인 안부 연락조차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. 그렇게 하루아침에 창업 팀에서 제외되었다. 신뢰했던 친구였던 만큼 그 친구의 조직운영 방식에 대한 동료로서의 실망도 컸고, 친구로서의 배신감과 상처도 컸다. 

 

이 사건을 계기로 인간관계에서도 정말 큰 회의를 느끼며 엄청난 심리적 암흑기를 보냈고, 그 이후 더 이상의 조직 생활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.

 

 

프리랜서에 도전하다

그 후 나의 다음 시도는 '프리랜서'였다. 하지만 프리랜서로 발돋움은 했지만, 바로 기존만큼의 월급을 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. 일은 했지만 월급이 0원인 달도 생기며, 생계 불안도 커졌다.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의 고정급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, 이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. 그렇게 프리랜서 일과 병행하며 헬스장 카운터를 보게 되었다.